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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n t e r v i e w 

클래식 대중화의 선구자, 유시연 교수를 만나다

2015.3.23. 숙명 핫뉴스

 

 

 우리대학 관현악과 유시연 교수 인터뷰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은 “동서양을 잇는 중계자역할을 한 음악가(서울대 음대 김정길 교수)”라는 평가를 받은 선구자다. 그는 한국악기의 연주법을 서양악기에 접목하려는 시도를 많이 했는데, 가야금과 거문고의 현을 뜯는 주법을 바이올린 연주기법으로 채택하는가 하면 플루트주자에게 대금의 떨림을 재현하도록 요구했다. 서양연주자들에게 그의 작품은 연주자를 극한으로 몰고 가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가 작곡한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은 쇤베르크의 12음계 기법에 한국의 정악색채를 담은 주요음 기법을 사용한 첫 작품이다. 당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이 곡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며 단체로 병원 진단서를 끊어오는 파업을 벌였을 정도다. 그러나 1959년 독일 다름슈타트에서 초연됐을 때 청중들은 음악에 큰 감명을 받고 열렬한 갈채를 보냈으며, 동양에서 온 작곡가는 3번이나 다시 무대에 불려나갔다. 동양음악과 서양악기의 만남이 가져온 힘이었다.

 

 

그로부터 50년 뒤 2009년 베를린 필하모니홀 무대에 한국에서 온 한 바이올리니스트가 섰다. 가녀린 어깨에 올려 진 바이올린이 구슬픈 아리랑 선율을 토해내자 청중들의 숨이 멈췄다. 느릿느릿 때로는 구슬프게, 때로는 장중하게 다가오는 가락에 몸을 맡긴 청중들은 “아리랑이 이토록 아름다운 음악인지 몰랐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환상적인 공연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우리대학 관현악과의 유시연 교수. 무대는 그녀의 8번째 테마콘서트인 ‘Folk Tune’의 베를린 필하모니홀 초연이었다.

 

 

유시연 교수는 선구자다. 2002년, 어려운 클래식 음악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소개하려고 최초로 테마가 있는 콘서트 형식의 독주회를 도입하였다. 대중이 부담감 없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동시에 클래식 음악의 다양성과 재미있는 역사를 소개하여 클래식에 대한 교육과 즐거움을 함께 경험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다.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에서 이 같은 행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유가 있다. 음악의 본질은 연주자와 청자가 '함께 즐기는 것'에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유 교수는 “예전엔 주로 독주를 했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함께 무대 위에서 소통하며 연주하는 것에 더 큰 기쁨을 느껴 훌륭한 음악인들과의 실내악이나 우리 학생들과 함께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연주를 즐겨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같이 즐기는 음악, 대중과 호흡하는 클래식이라는 화두를 이끌고 있는 유 교수를 만나 그녀의 음악철학과 숙명여대 교수로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바이올린을 닮은 소녀, 세계로 나가다

 유 교수가 바이올린을 배우게 된 것은 운명과도 같았다. 성악을 전공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여섯살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그녀는 어느 날 동생의 바이올린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 “넌 참 바이올린을 닮았구나. 한번 해보지 않겠니?”

마침 양손으로 건반 치는 것에 애를 먹던 그녀다. 강사의 말에 혹한 유 교수는 그날부터 바이올린을 잡기 시작했고, 거침없이 성장을 거듭했다. 한국일보, 이화경향 등 국내 유수의 콩쿨에서 우승하고 고등학교 2학년 때 동아일보 콩쿨에서 1위로 입상한 뒤 서울시장이 수여하는 ‘청소년 음악가상’을 수상했다.  선화예고를 졸업한 유 교수는 서울대 음대에 진학한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일찌감치 해외를 향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항상 노트에 적어가며 키웠던 꿈, 바로 세계 최고의 음악학교인 커티스 음악원 입학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전교생 150명이 전액 장학생이고 악기 별로 1년에 1~2명만 뽑는 영재 음악학교이다. 아무리 소싯적부터 재능을 인정받은 그녀라도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멋지게 합격하게 된다. 주빈메타와 아바도, 로스트로포비치와 같은 대가들이 학생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주는 학교, 그곳에 가면 자신의 세상이 새롭게 열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유 교수는 당시를 회상하며 “뭐랄까, 마치 연예인들과 함께 학교를 다닌다는 느낌이었어요. 음반에서만 들을 수 있었던 대가들로부터 사사하고, 함께 수업을 듣는 친구들도 이미 음악계의 스타인 연주자들이 많았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풀었던 꿈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쟁쟁한 영재들 사이에서 섬과 같은 고립감과 열등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모두 모인 곳이니 제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해도 도저히 따라 갈 수가 없었어요. 그때 땅바닥까지 떨어진 자존감은 말로 표현 못하죠” 유 교수는 그럴수록 더욱 바이올린 줄을 팽팽히 당겼다. 남보다 더 노력해야한다는 부담감이 가슴을 짓눌러 하루에 열세시간 연습을 감행했다. 그녀의 몸에 탈이 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팔의 힘줄에 염증이 생긴 것. 그녀는 결국 중도에 귀국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병원을 6개월 다니고 나머지 6개월은 그냥 쉬었어요. 부상이 완치되어 무리 없이 정상적인 연습을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무려 7년이나 걸렸죠. 이제는 바이올린을 다시는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과 절망감을 극복하면서 인생의 큰 공부를 한 것 같아요.”

커티스 음대에서의 치열한 생활이 끝난 뒤 유 교수는 우연한 기회를 통해 영국왕립대학에 진학한다.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으로 간 것이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자면 커티스에서의 생활은 마치 물 속에 잠영한 채 앞만 보고 빠르게 헤엄치는 기분이었다면 이곳에서는 비로소 물 밖으로 나와 바다를 바라보게 된 기분이었다. 테크닉, 기교를 연마하는데 집중했던 그녀는 이제 음색의 아름다움을 찾고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유럽인들의 사고방식이나 매너, 문화를 흡수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언젠가는 한번쯤 유럽에서 공부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국이나 미국과는 다른 새로운 시각을 배울 수 있거든요. 음악은 결국 인간의 감정과 생활을 표현하는 수단인데, 서양음악의 본고장인 유럽인들은 음악을 어려운 학문이 아닌 생활의 일부분으로 여기고 즐기며 살더라고요.”

이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 유 교수는 예일대에서 석사, 뉴욕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특히 이곳에서 배운 음악사와 음악이론에 대한 학구적 지식들은 이후 그녀가 테마콘서트를 열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유 교수는 “되돌아보면 눈 앞에 닥친 문들을 열다보니 그때마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교육을 받아온 것 같다”며 “음악세계에도 수많은 직업이 있는데 다양한 가능성을 모두 체험하지도 않고 진로를 정하는 것보다 자기 앞에 주어진 일에 두려움 없이 최선을 다하다보면 운명적으로 길이 열릴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늘 얘기하고 있다"고 말한다.

 

 

숙명여대 교수가 되다

흔히 음대 교수는 신이 점지해준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특정 악기의 교수 자리는 몇 년에 한 번씩 가뭄에 콩 나듯 나는 반면 전국의 날고 기는 실력자들이 대부분 지원하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그런 경쟁을 뚫고 2000년 숙대 음대 교수가 됐다. 채용 당시 에피소드 얘기에 그녀는 손사래를 친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정말 창피한 실수를 여럿 저질렀죠. 음대가 학생회관 건물에 있을 때였어요. 임용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백스테이지 입구를 찾지 못해서 잠궈 놓은 객석 문을 쾅쾅 두드리고 들어가 관객석을 통과해 무대 위로 올라가는 사고를 치는가 하면, 면접에서는 음대 시설이 어떠냐는 총장님의 질문에 방음도 안 되고 환경이 너무 열악한 거 같다고 돌직구를 날렸죠. 오랜 시간 외국에 체류하다보니 이쪽 사정을 전혀 모르고 철이 없던 것 같아 지금도 그 당시 생각을 하면 얼굴이 붉어집니다."

 

앞날이 창창한 바이올리니스트는 왜 대학교수가 되려고 했을까. “초등학교 때 통지서 장래희망에 ‘연주를 하는 대학교수’라고 썼던 기억이 나요. 당시만 해도 교수는 교육에만 전념하고 독주자로서 연주를 많이 하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연주와 교육을 모두 성공적으로 하신 스승 김남윤 교수님을 존경하는 마음에 그렇게 쓴 것 같아요. 사실 현장에서 직접 무대에 오르는 연주자가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고 모든 시행착오에서 터득한 지식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클래식의 대중화, 테마콘서트로 시작하다

유시연 교수하면 테마콘서트를 빼놓을 수 없다. 2002년 처음 시작한 이래 매년 주제를 바꾸며 이어져와 이제는 그녀만의 브랜드가 됐다. “그 당시에는 테마를 붙인 독주회가 없었어요. 대부분 본인이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보여주는 발표회 형식이었죠. 연주의 주체가 연주자이다보니 본인의 눈높이에 맞는, 본인이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연주하게 되지요. 관객에 대한 배려가 없는 연주가 클래식을 어렵고 지루한 느낌이 들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청중을 위한 음악회,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대중이 잘 듣지 못했던 감춰진 보석 같은 곡들을 소개하는 테마콘서트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 첫 결과물로 2002년 당시 알려지지 않았던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을 연주해 연주자와 청중이 모두 즐길 수 있는 음악회를 시작 하게 되었습니다."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해 시작한 테마콘서트는 첫 회 피아졸라의 탱고를 시작으로 서양음악의 발단인 종교음악, 민속음악, 궁정음악을 비롯하여 바로크음악, 에펠탑이 세워질 무렵의 프랑스 음악 등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확장된다. 그 외연이 넓어진 만큼 유 교수가 들인 품 또한 많아졌다. 8번째 테마콘서트인 Folk Tunes는 무려 7년의 기획을 거쳐 350여개의 세계 민속음악들을 수집하고 편집하여 완성됐다. 그녀의 아리랑은 바이올린으로 한국 전통 민요의 시김새와 농현을 표현하기 위해 수년간 직접 해금을 배운 결과물이다. “숙명여대 전통예술대학원의 강은일 선생님을 모시고 2년간 매주 토요일 3시간씩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수업을 들었어요. 처음엔 겨우 오선지에 그려진 도라지를 보고 연주했는데 나중엔 정간보에 쓰인 송구여지곡 등 정악도 연주할 정도가 됐죠.” 배우면 배울수록 자신이 생겼다. 동양 음악의 옅고 짙은 농담이 있는 감칠맛 나는 음색을 서양악기로 표현할 수 있을 듯 했다. 바이올린으로 아리랑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직접 원하는 스타일의 국악 연주 음반을 찾아 채보하고 악보를 만들었다.

 

이렇게 완성된 아리랑은 유 교수에게 단순히 우리의 전통가락 그 이상이다.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얼과 한이 서린 세계최고의 민속음악이다. “각 나라의 민속음악들 마다 몇 백년 동안 생존해온 에너지가 강하게 있어요. 오랜 세월 각 민족의 아픔을 위로해준 곡들이니까요. 그런데 전 세계의 모든 민요들 중에서도 우리의 아리랑은 함축된 에너지가 으뜸입니다. 내공이 완벽하게 꽉 차 있어서 그 이상 가는 음악을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바로 제가 Folk Tune에서 아리랑을 피날레 곡으로 연주한 이유에요. 아리랑 이후에는 그 어느 나라의 민요도 대응할 수가 없었어요."

 

제자들의 잠재력 찾아주는 스승 되고파

유 교수는 음악하는 사람들이 “순진하고 우직하다”고 말한다. 힘든 연습을 반복해야 하는데 꾀를 부릴 요량이면 애초에 시작도 안하니까 나온 말이다. 그녀 역시 자신에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어떻게 가르칠까?

“음악에 있어 나만의 교육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음악 교육은 전 세계 모든 학교에서 1:1 레슨 형태로 이뤄져요. 왜냐, 교수가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개개인의 연주와 신체 특성에 맞춰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가이드하는 맞춤형 교육이기 때문이에요. 음악이 일반 학문보다 훨씬 정교한 복합예술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교육의 중심점이 '지식'이 아닌 '학생'이기 때문입니다. 음대수업은 대부분 연주자 양성을 위한 수업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단, 저는 학생들에게 꼭 연주가, 솔로이스트가 되라고 강요하고 싶지 않아요. 각자의 재능이 다르고 진로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굳이 성공가능성이 희박한 길만을 보여주고 싶지 않거든요. 학생들의 재능을 파악해 그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주는 게 교수의 역할이라고 믿습니다.

 

실제로 유 교수의 제자 중에는 연주가 뿐만 아니라 재단이나 정부 산하 기관의 공무원, 교육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많다. 스승의 지도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행복하게 사는 법을 찾은 학생들이다. 그래서일까. 유 교수의 수업은 항상 학생들에게 인기만점이다. 매 학기 강의평가마다 수위를 다툰다. 지난 학기에 진행한 현악 앙상블 수업은 만점을 받기도 했다. 스승의 날에 제자들이 애기를 데리고 오면 같이 효창공원으로 나들이를 간다. 딸들이 딸들을 낳고, 그렇게 사제 간의 정이 깊어진다.

 

올해 유시연 교수는 연구년을 맞이했다. 매년 이어오던 테마콘서트도 십삼년만에 처음으로 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요즘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올해 예정된 연주회만 총 13번, 그중 60%가 체임버뮤직(실내악)이다. 오는 4월 열리는 경기실내악축제와 서울스프링페스티벌에서는 피어스 레인, 강동석, 김상진, 조영창 등과 함께 무대에 선다. “만약 연구년이 아니었으면 이 모든 연주를 어떻게 했을까 아찔해요. 원래는 여행으로 과로한 심신을 달래려고 했는데 모두 취소하고 하루 종일 고3 수험생처럼 스터디 중입니다.”

마치 영업비밀 캐묻듯 내년에 재개할 테마콘서트의 테마도 살짝 물어봤다. “Scent of Jazz라는 주제로 재즈의 향기에 취할 수 있는 콘서트를 만들어보려고 해요. 정말 재미있을 것 같지 않으세요?” 이런, 유시연의 재즈콘서트라니. 벌써 심장이 두근거린다

바이올리니스트 유시연의 테마 콘서트

The Music. 2012. 4.

글_장묘희

 

 

 10 년간 테마콘서트 완성

“그동안 테마콘서트를 지속적으로 찾아주신 관객 여러분께 감사와 섬김의 마음을 담아 저는 궁정 악사가 되어 청중을 King과 Queen 으로 초대합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유시연은 이번 ‘왕의 정원’연주 프로그램을 이렇게 풀어간다.

첫 번째는 프랑스 예술의 전성기를 풍미한 태양왕 루이 14세, 그가 베르사유 궁전 연회에서 즐겼을 음악 중 당대 최고의 프랑스 작곡가였던 쿠프랭의 실내악 곡을 바로크 악기와 연주법으로 당시의 궁정음악 재현이 그것이다. 프로그램은 이탈리아 궁전으로 옮겨가 나르디니소나타를 통해 우아하고 풍부한 이탈리아 음악의 특징을 보여주고, 다시 나폴레옹 시대로 청중을 인도하여 베토벤의 〈소나타‘봄’〉을 통해 고전음악의 정점을 소개한다. 이어 시간과 공간을 넘어 연주 여행은 다시 청중을  조선시대 경복궁으로 인내하여 ‘보허자’를 들려준다. 원래 당나라 음악이던 ‘보허자’는 조선시대에 왕세자 거동 시나 진연 때 연주되던 궁중 연례악이다. 〈국악 관악 합주를 위한‘보허자’〉를 바이올린과 피아노, 그리고 대금을 위한 곡으로 편곡하여 클래식 음악의 독주 무대에 연주 될 수 있도록 음악의 경계를 확장시켜 청중과의 새로운 공감 도모를 보여주고 있다.

 

유시연은 지난 10년간 테마콘서트에서 여러 장르의 음악을 주제로 삼아 성가곡, 국악, 민속음악, 실내악 곡 등을 새로이 편곡, 재구성 하여 바이올린 독주에 맞춘 창의적인 무대를 꾸준히 기획해 왔다. 서양음악은 크게 신을 위한 종교음악과 왕을 위한 궁정음악 그리고 민속음악 통해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있는데, 이번 테마콘서트에서 궁정음악을 연주함으로서 그동안 자신이 연주했던 종교음악회, 민속음악회와 더불어 서양음악의 핵심적인 요소를 두루 갖추어 그의 테마콘서트를 완성시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전한다.

 

창조 정신에 의한 열한 번째의 음악 투혼

항상 새로운 시도로 무대를 준비하고자 한다는 그. 어렵지만 그런 과정이 즐겁다며 자신의 일에 만족을 표한다. 예술이란 창조 활동이니만큼 클래식 음악에서도 100년이 넘은 음악에만 의존해서 과거의 음악회와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 클래식 음악의 본질과 내용적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음악회를 좀 더 재미있게 구성하는 작업이 현대 음악계에선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게다가 지난 3월 유시연은 “Pasion, Amor & Piazzolla"라는 타이틀로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 음반을 발매하였다. 작년 6월 테마콘서트 10주년 기념 음악회 때 연주 한 프로그램으로 녹음했고, 수록곡은 모두 피아졸라의 작품이다. 바이올린 독주뿐 아니라 반도네온과의 협연과 피아노 트리오의 앙상블이 포함되어 있다.

 

음악의 길을 가는 동안“음악은 어려운 학문이기 전에 아름다운 것이잖아요. 물론 많은 노고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제가 하면서 즐거웠으면 좋겠고 제 음악을 듣는 분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항상 생각한다는 그. 음악은 서양음악이든 남미의 음악이든 또 한국의 음악이든 모두 존경과 감사의 대상이라는 자세를, 그리고 항상 청중의 입장을 배려하는 무대를 만들며 음악적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이루어 내는 창조 정신을 유시연에게 배우게 된다. 

음악의 본질적 아름다움을 찾아나가는 굳센 여정

Music Friend   2012. 3.

글_김연정

 

 

마법처럼 숙명처럼 바이올린과 조우하다

유시연 교수의 손에 가장 먼저 닿았던 악기는 바이올린이 아닌, 피아노였다.

여섯 살 때, 동네 음악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웠던 그녀는 그날따라 레슨이 일찍 끝나 바이올린을 배우던 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 그녀의 운명을 마법처럼 바꾸어 놓았다. “바이올린선생님께서는 절 보시고, 동생보다는 제가 더 바이올린에 어울릴 것 같다고 말씀 하셨어요. 그 자리에서 악기를 건네주시며 시켜 보셨죠. 그 시간 이후로, 바이올린은 제 운명의 선율을 연주하는 악기가 됐어요. 이상하게 피아노보다 바이올린은 제게 자연스러운 몸의 일부처럼 다가왔거든요. 공부하는 도중에는 크고 작은 어려움은 물론 있었지만, 바이올린이란 악기와 제가 점점 일치되어가는 과정이 더없이 즐거웠어요.”

마치 한 몸처럼 친밀했던 바이올린과 그녀의 호흡은 찰떡궁합을 자랑했다. 이른 나이부터 한국일보, 이화경향 등 국내 유수의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쥐었고, 17세에는 동아일보콩쿠르에서 1위로 입상하는 등 놀라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치열한 경쟁의식과 선두를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한 발 거리를 떼고, 보다 먼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며 스스로를 부담감의 늪에서 해방시켰다. “너무 장대하게 계획을 세우지 않더라도 자신이 최종으로 원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건강하게 열심히’하고 ‘자연스럽게 노력’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 너무 무리하게 인내하고 자신을 절제하며 몰아세울 때, 오히려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었거든요. 어차피 음악은 평생 해야 하는 장기 프로젝트이니까 너무 일찍 힘과 열정을 소진해버리면 안 되잖아요. 음악은 원래 아름다운 것이고, 즐겁기 위해 하는 것이니까요. 그런 음악의 본질을 되살려 생각한다면, 너무 고생스럽지 않게 하는 것이 오히려 성공으로 가는 비밀이 아닐까요?”

 

그녀는 바이올린과 함께 즐거운 여정을 계속해 나갔고, 서울대학교 재학 중에 유학을 결심하면서 보다 새로운 세상을 향한 발걸음을 힘차게 내디뎠다. 커티스음악원과 영국왕립음악대학, 예일대학에서 석사학위와 Artist Diploma를 받은 데 이어 뉴욕주립대학에서는 박사학위를 받으며 학문에 대한 열의와 바이올린에 대한 애정을 키워나갔다. 무엇보다 유학 생활을 한 곳에서 하지 않고 다양한 나라와 도시를 거친 것과 서로 다른 교육 목표를 가진 학교에서 공부한 것은 인생의 큰 자산이 됐다. 그러나 그녀는 유학시절, 레슨과 연습에 집중하는 바람에 그 고장의 문화와 자연·풍습을 직접 보고, 경험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한다. 학생들이 유학을 떠날 때면, ‘바이올린만 배우려 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음악은 학문이기 이전에 인간의 삶을 옮겨놓은 인생의 축소판입니다. 작곡가가 악보에 옮겨놓은 감성을 연주자가 표현해내자면, 그 작곡가가 속해 있던 사회의 본질이나 풍습·언어·자연, 또 그들의 사고를 충분히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유학 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재산은 그 나라의 문화와 예술·관습, 그리고 그들의 휴머니즘을 감성과 피부로 직접 느끼고,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것이죠. 우선 충분히 느끼고 배워서 머리와 가슴에 저장하고, 이 다양한 재료들을 평생 공부의 밑거름으로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거기에 자신의 생각까지 더해 적재적소에 유용하게 꺼내 쓸 수만 있다면, 유학의 경험은 좋은 보물창고로 남을 거라 생각해요.”한층 성숙해진 모습의 그녀는 귀국할 수 있었고, 진일보한 실력과 진중한 태도 덕분에 귀국 직후, 숙명여자대학 음악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다.

교수로서 그녀는 학생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최대치로 이끌어내는 교육을 펼치고 있다.

“저는 레슨을 질문으로 시작하곤 하곤 해요. ‘이 곡은 어떤 느낌일까? 어떤 장면 일까?

 

어떤 스토리이고 어떤 감정일까?’로 시작해서 질문의 범위를 점점 좁혀 나갑니다. 제가 질문을 하고, 학생 스스로가 답을 해나가면서 작곡가가 느꼈던 감성에 최대한 가깝게 접근해보는 것이죠. 그 곡의 뉘앙스를 정확히 짚어내고, 그것을 악기로 표현해낼 때 학생들 스스로가 놀라움을 표해요. 제가 처음부터 곡의 의도와 표현법에 대해 모두 일러준다면, 반복적으로 가르쳐 주어도 학생들은 또 망각하게 될 테지요. 그러나 이런 식으로 스스로 생각하며 장면을 유추해간다면, 다음에 비슷한 상황과 맞닥뜨리더라도 얼마든지 혼자 스스로 표현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어요.”

 

청중, 음악적 영감과 다양한 연주의 원천

교육자로서의 유시연 교수를 움직이는 에너지의 원천이 학생들에게서 비롯된다면, 바이올리니스트로서 그녀를 연주하게 하는 원동력은 청중들에게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항상 저의 연주를 기대해 주시고, 공연장을 찾아주시는 청중들이야말로 ‘유시연 테마콘서트’의 중심 테마입니다. 선곡에 있어서 청중이 듣고 싶은 곡이 뭘까 늘 연구해 관객의 입장에서 프로그램을 짜요. 그리고 연주회를 찾아주시는 소중한 청중 분들께 실망감을 안겨드리지 않기 위해 온갖 정성과 노력을 다해 테마콘서트를 준비하고요. 아마도 청중 중심의 프로그램 구성이 저의 테마콘서트가 장기간의 시리즈 콘서트로 지속될 수 있게 된 힘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제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또 다른 10번의 테마콘서트를 시작하는 두 번째 사이클의 첫 연주가 되는 셈이네요.”

 

2002년, 그녀가 테마콘서트로 관객들을 처음 찾았을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피아졸라 (A. Piazzolla) 의 탱고 음악은 낯설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바이올린에 탱고 음악을 접목한 새로운 시도는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고, 이후 테마콘서트가 다양한 음악과 주제의 세계로 변용되고 확장 될 수 있었던 구심점을 마련했다. “아르헨티나의 카페나 스포츠 댄스에 서만 연주되었던 탱고 음악을 클래식 음악회에서 연주 가능토록 만든 피아졸라 음악의 매력에 푹 빠졌어요. 그 당시 독주회 전체의 프로그램을 피아졸라 음악만으로 꾸민 음악회는 외국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었죠. 개인적으로 이 곡들에 큰 흥미를 느꼈고, 꼭 연주회에서 선보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즐긴다면, 청중들도 좋아하시리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영국·일본·미국에 직접 가서 악보를 수집하기 시작했죠. 30여 곡의 피아졸라 작품들을 구해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기 가장 적합한 곡들로만 10곡 정도를 엄선했고, 프로그램으로 구성했어요. 물론, 원래 원곡이 탱고 밴드를 위한 곡들이다 보니 많은 부분 편곡과 재구성이 필연적으로 요구됐죠. 그렇지만 이렇게 많은 정보 수집과 노력을 거쳐 테마콘서트를 연출 하고 나니 보람도 크고, 배우는 것이 많아서 그 후에도 종교음악·민속음악 등 다른 연주자들이 한 번도 시도하지 않는 분야까지도 과감히 도전해볼 수 있었어요.”

 

오는 4월18일, 예술의 전당 IBK 챔버홀에서 열릴 그녀의 열한 번째 콘서트 〈The King's Garden〉은 그 어느 때 보다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10년간 쌓아온 계단 하나하나를 건너 새로운 챕터로 올라서는 도약의 태동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동안 저의 테마콘서트에서는 인간의 내면이 갈망하는 여러 장르의 음악을 주제로 삼아 성가곡·국악·민속음악·실내악곡 등을 새로이 편곡하고 재구성해왔고, 바이올린 독주에 맞춘 창의적인 무대를 기획해왔어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의 테마콘서트에서는 서양음악 중에서도 백미라 할 수 있는 궁정음악을 선보임으로써 감사와 섬김의 마음을 청중들에게 전하고 싶어요.”4월 콘서트에 앞서 이번 3월 말경에 출시될 그녀의 첫 번째 음반은 그동안 그녀가 화려하게 펼쳐왔던 예술세계를 집약해놓은 곡들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그녀의 음악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통로다. “제 첫 번째 음반이기에 더욱 뜻 깊고 설레요. 작년에 연주한 피아졸라 탱고 음악들을 응축해서 담아낸 음반이에요. 리베르탱고, 오블리비온, 아디오스 노니노, 에스쿠알로, 밀롱가, 위대한 탱고 처럼 피아졸라의 명곡들에서부터 반도네온 연주자와 함께 연주한 ‘탱고의 역사’가 수록되어 있고요. 피아졸라의 ‘사계’를 피아노 트리오 버전으로 연주한 곡도 담겨 있으니 아주 흥미롭게 들으실 수 있을 거예요.”

 

유시연 교수는 이 앨범이 나오기까지 꾸준한 기간 동안 자신의 이름을 내건 연주회를 선보이며 그 구성의 밀도와 음악적 예술성을 매해 더해왔다. 연주회를 준비하여 끝내기까지 얻은 교훈은 어김없이 자신과 학생들을 위한 좋은 자극제로 사용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음악을 하는 주체가 음악을 즐기며 그 속에서 행복하게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마음이 즐겁고 평화로워야 아름다운 소리들이 나올 수 있으니까요. 소중한 연주의 경험을 늘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학생들에게도 고스란히 일 깨워주고자 노력해요.”유시연 교수는 오늘도 ‘소리에 영혼이 깨어 있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음색을 갖춘 바이올리니스트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을 안은 채 연주에 임한다. 늘 청중을 두려워 할 줄 알고, 단 한명의 청중을 위해서도 정성을 다해 준비하는 연주자로 남고 싶다는 그녀. 유시연 교수는 봄의 희망을 실은 꿈의 열차와 함께 매년 진화되어가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여정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것이다.

가락 (家樂)

한옥에서 우리음악 듣기

2009.10

글_김은자

 

 바이올린 선율을 타고 세계로 나아가는 아리랑

2009년 2월 19일 베를린을 몇 십 년 만의 폭설로 버스까지 끊긴 상태였다. 멀리 한국에서 날아온 바이올리니스트의 독주회가 예정되어 있던 베를린 필하모니 홀에도 때 아닌 기상 악화로 관객을 찾기 힘들었다. 이제 막을 올려야 할 시간. 갑자기 수북이 쌓인 눈길을 헤치고 온몸에 눈이 쌓인 관객들이 속속 몰려들었고 바이올리니스트는 활대 끝네 그들을 태우고 세계로 떠나는 민속음악 여행을 시작했다. 팔색조처럼 세계 여러 나라의 음색을 표현하던 공연이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홀 안을 가득 울린 아리랑! 

 

2부에 아리랑을 했는대 독일 관객들이 다들 놀라와했어요. 바이올린에서 어떻게 한국의 악기 소리가 나오는지, 또 아리랑이 이토록 아름다운 음악인지 몰랐다고 우리 민요의 아름다움에 푹 빠졋었어요. 아리랑이 서양음악에 비해 조금 단조롭고 소박한 선율인데도 그 안에 함축 하고 있는 강한 에너지를 느꼇기 때문일 거에요. 느린 템포의 끝나는 음악이지만 진하게 응축된 기운이 너무 강한 인상을 남겨서 연주 순서를 정할 때도 아리랑 뒤로는 다른 곡을 넣기 어려울 정도에요. 하면 할수록 아리랑이 아주 특별한 음악이란 걸 느낍니다. 얼마전 8번째 테마콘서트 `Folk Tune`을 독일과 서울에서 가졌던 바이올리니스트 유 시연. 재직 중인 숙명여자대학죠 연구실로 그이를 찾았을 때 단연 화제는 이번 연주회에서 선보인 '아리랑' 이었다. 그이가 아리랑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된 사연은 이랬다.  아름다운 우리음악을 우리악기로 표현할 때 가장 아름답게 제 맛을 낼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국악기를 연주할 줄 모른다면 듣는 것만 가능한 소극적 즐거움에 그칠 겁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이 개량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아리랑을 그들이 익숙한 악기로 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확신이 들었다. 이미 19세기 독일 작곡가 브람스나 20세기 전반기에 활약했던 헝가리 음악가 바르톡이 그 예를 보여주지 않았나!

브람스가 편곡 각색한 ‘헝가리 무곡’은 헝가리 민속음악을 단지 오선지에 옮겼을 뿐이라고 당대에 표절시비까지 붙었지만 현재 전 세계인이 가장 많이 접하는 헝가리 음악 중 하나가 되었다. 바르톡도 집시에 의해 변형된 헝가리 민속음악의 원형을 수집해서 자국의 민속음악을 알리지 않았던가! 연주의 방향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아리랑의 감칠맛 나는 음색을 바이올린으로 표현하려면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았다. 악보와 음반수집, 작곡가 섭외, 편곡 등 심도 있는 조사와 연구 작업을 시작해 나갔다.

국악이 감칠맛 나고 좋은 것은 누구나 알지만 박자가 불분명하고 청중들이 듣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어요. 그래서 현대인이 알아 들을 수 있도록 변환하는 작업이 필요했어요. 우리가락 그대로를 손상 없이 오선지에 옮기되 리듬을 체계화 하고 단선율의 음악을 화성적인 피아노 반주로 편곡하는 일이었죠. 서양음악 작곡가들에게 부탁을 했더니 국악 작곡가들은 해금과 피아노는 가능해도 바이올린과 피아노로 우리가락을 연주하면 밋밋해서 불가능 하다고 거절했었어요.

 

그렇게 5년을 찾았지만 브람스나 바르톡과 같은 생각을 가진 작곡가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이제 남은 방법은 그이가 원하는 스타일의 국악 연주 음반을 찾아서 직접 바이올린으로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아리랑이라고 하는 음악은 죄다 찾아서 들었다. 노래로 부르는 아리랑, 기악연주 아리랑, 각 지역의 아리랑까지 손 닿는 것이면 모조리 수집했다. 그 중에 선별된 음악이 양준호 작곡, 김경아 연주의 피리 곡 아리랑 등 5개였다.

해금은 약간 거친 맛이 있어서 음색이 깨끗한 음색의 바이올린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김경아 씨의 피리 연주 아리랑을 들었을 때 꿋꿋하게 뻗어가는 피리 소리가 바이올린으로 표현하기에 제격이다 싶었죠. 작곡가 양준호 씨에게 찾아가서 악보를 좀 달라고 부탁했는데, A4용지에 코드만 적혀 있더라고요. 코드 정보를 얻고 그 뒤부터는 직접 들어가면서 악보를 그려나갔어요

거기서도 어려움이 있었던 게, 어떤 부분은 피리가 훌떡 꺾어서 음을 내는데 무슨 음인지 도무지 모르는 게 있었어요. 그래서 김경아 씨에게 레슨도 받았습니다. 알고 보니까 연주자가 의도한 소리가 아니고 악기의 특성상 묻어 나오는 소리더군요.

그렇게 완성된 악보는 간단하고 소박했다. 이제 이 악보에 어떻게 생명을 불어넣을까? 아리랑의 맛을 살리고 싶었던 그이는 바이올린으로 국악기의 음색이나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자면 가락이 몸에 스며야겠다 싶어서 2007년부터 2년간 강은일 씨에게 해금을 배웠다. 또 손 닿는 대로 국악 연주를 들으며 장단이나 농현, 시김새 등을 느끼고 이를 바이올린으로 표현하는 연습도 부단히 계속했다.

이번 연주회를 준비하면서 얻은 게 많아요. 김경아 씨의 피리 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렴풋이 ‘한 恨’ 이란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줄에서 지판 까지 0.5cm도 안 되는 바이올린으로 그런 소리를 표현해 낼 수 있을지 늘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락의 미묘한 맛을 100% 표현하지 못하더라고 제 시도를 통해 현대인들과 외국인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선율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일종의 사명감이랄까요!

 

한 번의 연주회를 위해 몇 해를 준비하는 그이의 진지함이 이야기 속에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탱고, 독일 소나타, 비르투오조의 환상곡, 종교음악 등 매년 독특한 주제로 진행되는 테마콘서트! 연구실 벽면에 일렬로 붙어있는 포스터에 눈이 간다. 한복 저고리에 청바지를 입고 경쾌하게 가방을 든 듯 바이올린 스크롤을 살짝 준 모습이 재미있다.포스터 이미지요? 제가 잡았어요. 이번 연주회가 아리랑도 하면서 세계 민요를 다양하게 하기 때문에 전통적 이미지인 한복에 글로벌한 느낌을 주기 위해 청바지를 입었어요. 거기에세계 여행을 가듯 걸어가는 느낌으로 사진을 찍었죠.

하나의 연주회가 이루어지기까지 그이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다. 테마를 잡고 연주 곡을 선정하는 일은 물론이고 포스터 디자인이나 글씨체 하나까지 꼼꼼하게 체크한다. 관객들에게 훌륭한 만찬을 대접하듯 좋은 연주를 선사하고 싶은 마음에서란다.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느냐는 물음에 돋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창피당하기 싫어서라는 의외의 답을 한다. 수줍음 많은 그이가 무대에 올라야 하는 연주가라니!

어머니께서 어릴 때 저희 형제들에게 악기를 하나씩 배우게 하셨어요. 여섯 살 때 저는 피아노를, 동생은 바이올린을 배웠어요. 한 번은 먼저 레슨이 끝나 동생을 기다리고 있는데, 바이올린 선생님께서 제 느낌이 바이올린과 닮았다고 해보라고 권하셨어요. 그 때부터 바이올린이 제 운명의 악기가 됐습니다.

연주가를 향해가는 그이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선화예고를 거쳐 서울음대에 입학했고 한 학기 만에 커티스 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나 학사학위를 받은 뒤 유럽으로 건너가 영국 왕립음악대학에서 연주자 과정을 마쳤다. 그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예일 대학교에서 석사학위, 뉴욕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요즘 말로 ‘엄친딸’ 이다. 그런 그이에게도 슬럼프가 있었다.

커티스에 재학 중일 때였어요. 커티스 음악원은 고도의 기술교육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던 학교입니다. 부푼 꿈을 안고 입학을 했는데, 그곳 학생들 기량이 완벽하다 싶을 만큼 테크닉적으로 뛰어난 거에요. 자신감이 급격히 떨어졌죠. 어떻게든 다른 애들을 따라가야겠다 싶어서 하루에 13시간씩 혹독한 연습을 했어요.

 

그렇게 몇 개월 동안 하다가 결국 탈이 났습니다. 팔의 인대에 염증이 생겼어요. 바이올린을 들 수도 없고 심지어는 숟가락도 잡을 수가 없었죠. 1년 동안 팔을 쓰지 못했습니다. 공부라고 해볼까 싶었는데 펜을 잡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 어머니께서 한국에 들어와 쉬라고 하셨어요. 처음엔 바이올린을 못한다는 생각에 힘들었지만 그 동안 못해 본 좋은 경험들을 하면서 자유롭게 보내다 보니 슬럼프도 사라졌죠. 예술가라면 누구나 슬럼프를 겪게 마련인데 그럴 때면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도 좋다고 봐요.

시련이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거름이라고는 하지만 그이에겐 아무래도 바이올린이 운명인가 보다. 올해 초 테마콘서트를 준비하며 그이는 또 몹시 앓았다.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아팠어요. 병원에 가도 모두 정상이라고 하는데, 4개월 동안 세끼를 내리 죽만 먹었어요. 힘이 없다 보니까 얘기도 못할 지경이었죠. 그런데 이상하게 바이올린만 하면 멀쩡해요 리허설 할 때도 어지러워서 한번만 하자고 해놓고 막상 연습 들어가니까 에너지가 펄펄 솟더라고요. 주변에서 아픈 사람 맞느냐고 묻던데, 저도 제 자신이 신기해요. 아마 인이 박혀서 그런가 봐요. (웃음)

 

누구보다 자신에게 엄격한 그이. 그렇다면 혹 학생에게도 ‘호랑이 교수님’이 아닐까?

네. 엄하죠. 학생들이 벌벌 떨어요. (웃음) 제 교육 방침은 학생들이 멀리 볼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겁니다. 뭘 하든지 평생 끌고 나갈 수 있고 자신이 즐거워하는 직업을 찾아야겠지요. 그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고 그 분야에서 인정 받지 못하는데도 계속 한다면 좀 슬플 것 같아요. 자신에게 소질이 있는 분야를 발견하고 발전 시켜서 그 직업에서 자신이 노력한 정당한 대가를 받을 때 비로서 자긍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음대에서 가르치는 방향이 연주가 양성 인데. 학생들과 개별 상담할 때는 아이들의 장점을 파악해서 진로를 다른 방향으로 추천하기도 해요. 무슨 일이든 자기에게 가치 있게 느껴지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연주를 한다고 해서 모두 솔로이스트가 되기는 힘들다. 그래서 그이는 학생들의 재능을 파악해 오케스트라나 어린이 교육, 음악 경영 등 여러 방면으로 조심스럽게 조언하기도 한다. 그렇게 조언한 학생들이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찾아올 때면 반가운 마음에 뿌듯함이 더한다. 그런 그이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테마콘서트는 계속 진행하려고 해요. 내년에는 브람스 전곡 소나타를. 내후년에는 영화음악을 할 계획입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준비 중이에요. 테마콘서트를 하면서 연주가로서 두 가지 사명감을 갖게 됐어요. 하나는 우리 민요를 외국에 지속적으로 알려야겠다는 것입니다. 아리랑도 제가 일회성으로 한번 하고 나면 그걸로 끝나기 때문에 해외 연주가 있을 때 가능하면 많이 연주 할 생각입니다. 다른 하나는 테마콘서트로 준비하려는 어린이 음악회에 대한 겁니다. 어린이들이 클래식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아 대체로 클래식을 어렵게 느껴요. 그런 어린이들에게 일상에서 들을 수 있는 클래식을 들려주고 마음을 열어주고 싶어요. 바이올린을 통해 대중들과 소통의 길을 마련하는 게 제 자신의 의무이자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들에게 최상의 연주를 들려주고 싶은 그이인 터라 건강 때문에 올해 잡혀있던 몇 가지 협연을 취소했다. 하지만 한옥에서 하는 가락 공연은 바이올린으로 우리 것에 다가가고자 하는 그이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어 수락했다고 한다. 테마콘서트에서 연주했던 민속음악과 탱고음악, 그리고 아리랑을 연주할 예정이다. 헝가리의대표적인 춤곡 형식인 몬티의 ‘차르다쉬(Csardas)’, 보헤미안의 정서가 녹아있는 스메타나의 ‘고향으로부터(Aus der Heinat)’, 영화 ‘여인의 향기’에 삽입되었던 가르델의 ‘한끝차이(Por una Cabeza)’, 마지막으로 양준호 가 작곡한 ‘아리랑’이 그이가 준비중인 곡목이다. 툇마루에 앉아서 듣는 바이올린 소리는 어떨까? 가을에 있을 연주가 봄부터 기대된다.

 

 

 

 

 

The Passion of Italy - 유시연 바이올린 독주회

The Strad.  2005. 9.

글_김효진

 

지구가 탄생한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사과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지만, 거기서 만유인력을 유추해 내지는 못했다. 오직 뉴턴만이 그러한 작용이 어떤 걸 의미하는지 생각했을뿐이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본다고 해서 누구나 뉴턴이 될 수는 없는 것처럼, 주제가 있는 음악회를 연다고 해서 유시연처럼 되기는 어렵다. 그녀는 장기간의 안목으로 이러한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사실, 프로그램이 다채롭다는 건 그것 자체가 의미가 있을 수도 있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연주의 완성도라는 측면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프로그램이 다양하더라도 절반의 의미부여만 할 수 있다. 유시연은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며 지금까지 상당히 많은 성과를 가져왔다.

 

그녀와 함께한 인터뷰 시간들은 고스란히 추억으로 사그락 거린다. 유시연은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연주자보다 많은 음악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종종 그녀와 대화를 하다보면, 밑천 떨어진 노름꾼처럼 초조해지곤 했다. 언어를 자연스럽고 풍부하게 구사한다는 건, 음악 연주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 말하는 스타일에 묻어나오는 아티큘레이션은 바이올린의 선율처럼 주변을 감돈다. 쉼표와 쉼표 사이, 단어와 단어 사이에 그녀만의 호흡이 있다. 사실 말의 리듬감은 음악의 리듬과 유사하다. 길게 늘어뜨리거나 힘주어 말 하는 것과 음악의 프레이징은 얼마나 다른 것일까.

지난 테마 콘서트(2004년 5월 1일, 대한성공회)인 〈Concertino Angelico〉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음악적 감수성을 선사했고, 이번 연주회인 〈The Passion of Italy〉에 대한 기대가 많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는 지나간 시간의 연장으로 현재를 바라보고 더나아가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지금 그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은 이러한 시간의 퇴적물이 만들어낸 결과들이다.

 

다음 주제는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기념으로 〈After Mozart〉가 예정되어 있다. 이번에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피아니스트 박수진과 함께 연주할 레퍼토리는 나르디니의 〈소나타〉, 비탈리의 〈샤콘느〉,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타르티니의 〈악마의 트릴〉이다. 이탈리아의 바로크 시대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색다른 관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나르디니 소나타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음악인데, 완전히 잊혀진 곡이죠. 20세기 초반에는 상당히 많이 사랑받던 곡이었어요. 비탈리 샤콘느와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그리고 타르티니의 악마의 트릴은 연주하기가 까다로운 음악들이예요. 음악적으로도 테크닉적으로도 그렇죠. 이 시대의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 시대악기 연주 방식에 대해서도 연구했습니다.

Trio de Sé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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